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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축구사에 남긴 80년생 '4대천왕'의 위대한 추억

2017-04-20 11:06:55 | 작자:최용재 기자 | 출처:네이버 스포츠
개요:너무나 강렬하고 위대한 족적으로 세계 축구팬들에게 큰 환희와 즐거움을 안긴 '4명'의 슈퍼스타가 태어난 해이기 때문이다. 축구팬들은 이들을 향해 80년생 '4대천왕'이라고 불렀다.

[일간스포츠 최용재]

 

 

 

 

1980년은 세계 축구사가 기뻐해야 할 해다.

너무나 강렬하고 위대한 족적으로 세계 축구팬들에게 큰 환희와 즐거움을 안긴 '4명'의 슈퍼스타가 태어난 해이기 때문이다. 축구팬들은 이들을 향해 80년생 '4대천왕'이라고 불렀다. 한국 나이로 38세. 지금은 전성기에서 내려왔거나 현역에서 물러난 선수들이다. 그렇지만 축구팬들은 이들이 선사한 아름다운 추억에 감사하고 있다. 그들의 플레이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동시대'에 살았다는 것에 희열을 느끼고 있다.

4명의 주인공은 존 테리(첼시·잉글랜드)·스티븐 제라드(은퇴·잉글랜드)·사비 에르난데스(알 사드·스페인)·호나우지뉴(무적·브라질)다.

 

 

◇ 첼시의 '심장' 테리

첼시의 '심장'이 떠난다.

첼시는 18일(한국시간) "올 시즌 끝으로 테리와 이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1998년부터 첼시에서 활약하며 첼시 수비의 상징으로 군림했던 테리가 세월의 흐름을 이겨 내지 못하고 첼시를 떠나게 됐다. 테리는 미국메이저리그사커(MLS) 진출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그저 그런 팀이었던 첼시는 테리의 전성기와 함께 최강팀으로 성장했다. 테리는 첼시의 수비를 이끌면서 프리미어리그 4회, FA컵 5회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리그에서 강호로 거듭난 첼시의 마지막 꿈은 UCL이었다. 테리의 결정적 장면은 2011~2012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우승이었다. 첼시는 결승전에서 바이에른 뮌헨(독일)을 만나 승부차기 끝에 승리하며 감격적인 첫 번째 UCL 왕좌를 차지했다.

앞서 2007~2008시즌 절호의 기회를 잡았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 결승에 오른 첼시는 리그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격돌했다.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첼시는 무릎을 꿇었다. 테리는 승부차기 키커로 나서 실축하며 패배의 불씨를 제공했다. 테리는 좌절하지 않았다. 이후 심기일전한 첼시와 테리는 결국 2012년 우승으로 환하게 웃었다. 마지막 한을 풀었다.

 

 

 

◇ '영원한 캡틴' 제라드

제라드는 '영원한 캡틴'이라 불린다.

1998년 리버풀에 입단한 뒤 2015년까지 몸담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캡틴으로 살았다. 그의 리더십은 주장의 본보기였다. 가장 이상적인 리더로 평가받고 있다.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뽐내며 팀을 지휘하던 제라드를 중심으로 리버풀은 강팀 반열에 올랐다. '리버풀이 곧 제라드'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품고 있었다.

제라드의 결정적 장면은 2004~2005시즌 UCL 결승전이었다. 이탈리아 명가 AC 밀란과 격돌한 결승전에서 리버풀은 전반에 0-3으로 뒤졌다.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제라드가 기적을 일궈 냈다. 제라드가 후반 골을 넣은 것을 시작으로 리버풀은 내리 2골을 넣으며 승부를 3-3 원점으로 만들었고, 승부차기에서 승리하며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경기가 열렸던 장소가 이스탄불이었기에 이 신화는 '이스탄불의 기적'으로 추억되고 있다.

제라드는 UCL 우승과 함께 FA컵 2회 우승을 이끌었지만 정작 리그 우승은 해내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그는 2015년 MLS LA 갤럭시로 떠났고, 2016년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 '패스 마스터' 사비

'패스 마스터'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 사비다.

중앙 미드필더 사비의 패싱력은 단연 세계 'No.1'이었다. 따라올 자가 없었다. 패스 성공률이 평균 90%에 육박했다. 그가 지배한 중원은 강했고, 사비를 품은 팀은 세계 최강의 팀으로 군림했다.

1998년 스페인 최강 바르셀로나에 입단한 뒤 2015년까지 사비는 '바르셀로나 제국'을 완성시킨 일등공신이다. 리그 8번, 스페인 국왕컵(코파 델 레이) 3번 등 정상에 올랐다. UCL에서도 4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바르셀로나 전성기는 사비의 전성기와 일치했다.

사비의 역량은 바르셀로나를 넘어 스페인 축구를 세계 정상으로 이끌었다. 우승하지 못하는 유럽의 평범한 강호라는 평가를 받던 스페인은 사비라는 패스 마스터의 등장으로 비상하기 시작했다. 사비의 전성기는 스페인 축구가 세계를 점령할 때와도 겹친다. 유로 2008, 유로 2012를 연이어 석권했다. 또 사비는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스페인에 사상 첫 월드컵 우승 트로피도 안겼다.

많은 축구전문가들이 리오넬 메시(30·바르셀로나)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2·레알 마드리드)가 아닌 사비에게도 한 번은 발롱도르가 안겨야 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사비는 2015년 카타르 알 사드로 이적해 현역 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

 

 

 

◇ '외계인' 호나우지뉴

'외계인'이라는 별명이 딱 맞았다. 호나우지뉴의 플레이는 지구상에서 볼 수 없었던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폭발적 드리블과 현란한 개인기 그리고 절정의 골결정력과 패싱력까지 공격수가 갖춰야 하는 모든 것을 두루 갖췄다고 평가받았다. 상대 수비가 예측할 수 없는 압도적 플레이로 호나우지뉴는 세계 최고 선수 자리에 올랐다.

메시가 있기 전 바르셀로나 에이스는 호나우지뉴였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하며 리그 우승 2회, UCL 우승 1회를 이끌었다. 2005년 발롱도르와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호나우지뉴 시대'를 선포했다. 호나우지뉴가 바르셀로나를 떠나면서 백넘버 10번을 메시에게 물려준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월드컵 우승 트로피도 그의 품에 안겼다. 호나우지뉴는 2002 한일월드컵 브라질 우승 멤버다. 펠레(77), 호나우두(41) 등으로 이어지는 브라질 축구 천재 계보의 한 축을 담당했다. 현재 팀을 찾지 못하고 있는 그는 현역 은퇴를 앞두고 있다.

최용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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